완연한 봄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파랗고 태양빛은 강렬한데,
바람이 시원해서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찬란하게 눈이 부신 풍경들,
산들거리는 꽃들과 나뭇잎들,
삼삼오오 함께 놀러 나온 사람들.
친구들, 연인, 아니면 단란한 가족들.
The Rocks에 위치한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있는데
오늘따라 유독 분주하게 느껴진다.
아, 오늘 Father’s Day였지?
어쩐지 바쁘더라.
그나저나 우리 아빤 무얼 하고 있을까?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나도 직접 감사 인사를 전했겠지.
물론 늘 마음으로 전할 수 있겠지만.
당신이 일찍 떠나신게 마음에 걸렸을까.
생각해보면 작게든 크게든 나를 돌보아 주었던 좋은 아버지뻘의 인연들이
내 인생에 시기마다 꼭 계셨던 듯 하다.
물론 좋았던 쪽으로 해석하고 싶은 나의 착각일 수 있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 자신감없고 소심해져 있던 나에게
내 미술적 재능 – 물론 미술의 길을 걷진 않았지만 – 을 칭찬하고 아껴주셨던
6학년 담임 선생님.
어머, 이젠 성함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귓털이 송송나고 짙은 뿔테 안경을 쓰셨던 분인데…
중학교 때엔 박지인 수학 선생님.
3년 내내 특별히 나를 돌봐주셨다기 보단
삶의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를 살게해주셨던,
지금까지 내 인생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어른의 조언을 해주셨던 분.
소소한 장학금도 받게 도와주셨고,
무료로 안경을 맞출 수도 있게 해주셨다.
(실제로 이 때까지 난 내 시력이 나쁘다는 것도 몰랐다.)
고등학교 때는 누가 계셨을까 생각해보면 의외로 ‘봉고차 아저씨’이다.
마찬가지로, 딱히 나를 더 챙겨주셨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분은 뭐랄까, 늘 따뜻한 삼촌 같았다.
거의 매일 아침, 밤으로 환한 미소를 짓고 우리를 태워 날라주셨다.
가끔은 공부하느라 애쓴다고 비싼 베스킨라빈스도 사주셨지.
다른 기사님들에게선 절대 느껴본 적 없는,
그 분 특유의 포근한 따스함이 있었고,
나는 그 분이 운전하시는 차를 타는게 참 좋았다.
그 차에선 어쩐지 친구들이랑 즐거운 대화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삭막했던 수험 생활에서 온기가 느껴졌던 봉고차 아저씨의 존재.
대학에 와선 애증의 ‘배새’가 계셨다.
학교 다니는 내내 물질적으로 정말 큰 도움을 주셨다.
다양한 장학금 혜택에 맛있는 밥에…
(당시의 나는 코끼리만큼 잘 먹어서 사 먹이는 맛이 있긴 했을 것이다)
물론 그 만큼 조교일을 쎄가 빠지게 하긴 했지만.
대학생이 되면 돈 쓸 일이 많아진다.
고등학생 때, 듣고 싶었던 인강 하나 사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을 만큼
아빠가 돌아가신 뒤 우리 가족은 늘 가난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다니는 학교가 대학교로 달라졌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배새는 수 많은 일거리와 감정 노동을 대가로 많은 장학금 기회를 주셨고,
퍽퍽했던 내 대학생활에 단비같은, 그야말로 밥줄 이었다.
그러나 졸업이후 단 한 번도 찾아뵌 적도, 연락을 드린적도 없어
그는 아마 나를 천하의 Bitch쯤으로 여기시겠지.
사실 그 분이 뭘 잘못한 것은 없다.
오히려 돌이켜보면 최고의 은인이셨던 분이다 (물질적으로).
단점이 있다면 그 시절 흔한 꼰대 아부지 같은 느낌?
문제는 나였다.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만 잘 할 줄 알았던 나였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같은 것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알바 경험 한 번도 없었던
그야말로 온실 속 화초,
아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3.5년을 보냈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나서도 이렇다 할 멋진 취직을 할 자신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두려운 것도 많았던 애송이었군)
그저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뭐, 사실 다 핑계고,
그들의 자랑스러운 과탑은 자괴감을 떨치지 못해 도망쳤다.
나를 아끼고 믿어왔던 분들께는 큰 배신이었을 것이다.
뭐랄까, 약간 ‘실패한 장남’이 된 기분이었달까.
내가 보기 좋게 성공해서 그 분들의 자랑이 되기전까지는
절대 다시 찾아뵙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남아있다.
그 이후로는 어영부영 호주다.
재미있게도 11여년을 살아오면서 총 5번의 (현재 포함) 직장을 거치면서도
아버지 같은 분들을 여럿 만났다.
2번째 직장에서 Giovanni,
3번째 직장에서 Alex,
5번째 (현)직장에서 ADV
나머지 두 곳에서도 아버지 뻘은 아니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들..
(워딩이 좀 이상한데 공통점을 잡자면 이러하다)이 내게 귀인이 되어주셨다.
Geoff와 John. G.
이렇게 되짚어보면 감사했던 분들이 정말 많다.
난 절대 나 혼자 잘해서 여기까지 온게 아닌데,
그 분들과는 이래저래 멀어지고
귀한 연을 잘 이어오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
어쨋든 Giovanni 얘기로 돌아오자면
함께 투닥투닥 웃고 장난치고, 때로는 함께 으쌰으쌰 일했던
친구같은 아부지였고,
Alex는 다정하고 정 많고, 서로 부둥부둥해주다가도
가끔씩 꼰대력이 폭발하거나 일적으로 부딪히면
죽을 듯이 치고 박고 싸우기도 한 애증의 아부지였고,
현재 ADV 아부지는 약간 딸바보스러운 아부지랄까.
본인 아드님의 회사에 일하는 나를 정말 딸처럼 대해주신다.
아들만 둘이라 그런가.
게다가 부자다. 아드님도 부자다.
이 두 부자 부자들에게 나는 풍요로움과 나눔, 사랑, 베품을 받았고 배웠다.
이들을 보면 나도 꼭 이렇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다.
늘 칭찬과 격려, 따뜻한 말을 주고 받는 이상적인 가족.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벌써…
음, 99년도 였으니까 이제 거의 27년이네.
그 긴 시간동안
어쩌면 진짜 우리 아빠가 보여줬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모습의 아빠들이 내 인생 전반에 걸쳐서
전우치의 분신 마냥 나타나줬던 게 아닐까.
끝은 결국,
나도
아빠 보고싶다.
매일 생각하진 않아도
늘 내 마음속에 살아계신다고 믿어온 우리 아빠.
이제 몇 년만 더 지나면
아빠가 세상을 등졌던 나이가 된다.
나도 이제 맛있는 식사 한끼 멋진 곳에서 대접할 수 있을만큼 컸는데.
How are you doing out there!!!!
보고싶다, 유시면씨.
Happy Father’s Day to you.
And thank you, as always, for looking after me.
6 September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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