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축축하게 비가 내리는 중이다.
어릴 적부터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단 따사로운 햇볕이 없고,
다른말로 하자면 세상이 대체로 무채색으로 톤다운이 되며,
습하고, 꿉꿉하고, 괜히 나른해지는데,
이게 또 볕을 쬘때의 나른함과는
다르게 축 처지는 나른함이랄까.
나에게 상태창이 있다면,
마치 나의 HP가
떨어지는 비에 함께 씻겨
쭉쭉 떨어지는 느낌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에 유독 그러하다.
그런데 장대같이 퍼부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사람 마음이, 아니 내 마음은 참 간사해서
같은 ‘비’인데도 차별을 한다.
Rainist!! 음?
아무튼 시원하게 퍼붓는 비는 꽤 반갑다.
물론 행색을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면 곤란할 때도 있으나,
장대비가 쏟아지면,
그냥 다 내려놓고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시절의 어린 나로 돌아가
온 몸으로 그 비를 흠뻑 맞고 싶어지는 것이다.
굵은 빗방울이 내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두들기는 느낌과
시원한 듯 차가운 듯 상쾌해지는 빗물의 온도가 좋다.
비를 막아줄 작은 우산,
몸에 걸친 옷이나 신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퍼부어대는 비를
마치 내가 반갑다고 달려드는 골댕이를 상상하며
‘그래, 어디 한 번 있는 힘껏 와봐!’ 하며
온전히 받아들이면
세상 그렇게 행복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들수가 없는 것이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에 있건 간에
일순간 나는 순수한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자연 속 자유로운 기분.
때문에 대체로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느 비오는 날에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냥 ‘비 마중’을 하러 나가고 싶어진다.
흔히 비를 그대로 맞고 다니면 광년이라고 하는데,
자유를 잃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다르고 이상하게 보였을 뿐
어쩌면 광년이는 그저 자연스러움을 즐길 줄 아는
자유로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비록… 장대비는 아니었지만.
이슬비도 보슬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것도 아닌
보통의 비? 라고나 할까.
굳이 논하자면 – 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 넓고 얕게 오는 비?
살짝 굵은 입자로 뿌려대는 조악한 스프레이 미스트같은 비..?
종일 졸리고 나른했어서
퇴근 후에 바로 잠이 들것 같아
‘오랜만에 비 좀 맞아보자’ 하고 부러 밖으로 나섰다.
역시나 ‘비 마중’에 완벽한 비는 아니어서 재미는 덜 했지만
잔잔히 내리는 빗 속 센테니얼 파크는 퍽 운치 있었다.
짙은 풀냄새와
나뭇잎에 부딪히는 타닥- 타닥- 불규칙적인 빗방울 소리.
그 속, 나와는 다르게 진지하게 운동을 하러 나온 멋진 사람들.
척척한 도로위를 지나가는 쩌억- 찐득한 자동차 바퀴소리.
물이 반사되어 빛이 위아래 두배로 확장되는 도시 풍경.
그 속 작은 자유를 만끽하는 원숭이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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