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손을 잡아봐


    나는 요 몇주 퍽 미련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먼저 다가갈 용기는 못 내면서
    혼자 온갖 회상과 상상을 자처하고
    설레어했다가 상처받았다가,
    문득 현타가와서
    아, 이건 아니지. 내 삶을 잘 살아야지! 하면서
    다시 나를 다잡다가,

    또 밤이 되면 생각이 많아져서
    이랬다면, 아니 이렇게 한다면,하는 무수한 가능성을 꿈꾸다가 지쳐 잠이 들고
    아침이 되면 다소 무기력하게 깨서는
    아, 이건 아니지. 오늘 하루는 생산적으로 보내야지! 하면서
    다시 나를 또 일으켜 세우는
    퍽 미련한 시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젯밤도 다를 바 없었고,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같은 시작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나는 나를 꽤나 사랑하는 인간이라서
    정말로 이렇게 계속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며 지낼 수 없다고 판단.
    또 한번 알고리듬을 짜보았지요.

    ——————————————————————————————————————-
    먼저 연락을 할까? -> 퍽 자신이 없다 -> 못할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연락을 한들 당장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연락을 해서 만남 유도를 할 수 있다면 먼저 다가갈 용기는 있으나, 일단 현재로썬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만남을 가질 수도 없는데 연락을 해 보는게 의미가 있을까? -> I don’t think so.

    그렇다면 먼저 연락이 올까? -> 전혀 모르겠다 -> 아마 높은 확률로 안 .. 올것 같다.
    먼저 할 수도, 올 일도 없다면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인연이라면 당장이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이다.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 잘 모른다 90% 이상
    나에 대한 호감이 있을까? -> 잘 모르겠다 90% 이상
    나는 그에게 호감이 있을까? -> 궁금하다 50% -> 충분한 정보가 없기에 호감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싶은가? -> 그렇다 -> 처음보는 유형의 동갑내기이고 친해지면 좋을 것 같다
    나중에 볼 수 있는 기회는 있지 않을까? -> 아마도 80% -> 그럼 그때 더 친해져보자.

    결론: 지금 당장 관계를 더 발전시키기도 애매하고, 물리적으로도 멀다. 그러니 일단 내 하루부터 챙기자.
    ——————————————————————————————————————-

    … 라는 결론에 이르고,
    읽고 있던 책을 이어나가기 위해 딱 펼친 순간,
    나에게 딱 필요한 문장이 적혀있어서 남겨봅니다.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중, 이해인 저

    … 아, 내가 지금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있구나.

    통제할 수 없는 것 중에서 가장 큰 몫은 타인의 생각이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무슨 감정을 갖고 있는지,
    그 사람의 머릿속을 이해하려 애쓸 수록 나는 점점 더 지치고 흐려진다.

    그게 설령 ‘진짜 마음’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그건 나의 영역 밖이다.

    그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생각과 행동을 고르는 일이다.
    오직 그 선택만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지탱해준다.

    ……
    이건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인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생각의 방향이 바뀐다.
    그리고 나의 하루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마음, 지나간 과거, 알 수 없는 미래.
    이 모든 것들에는 더 이상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에 나는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나의 선택을 정성스럽게 고른다.

    그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하루의 방식이다.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나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는 하루를 만들어가고 싶다.

    명확한 답도 없는 이 같은 지독한 고민과 걱정,
    상상의 도를 넘은 망상으로부터 나를 꺼내줄 수 있는건 오직 나뿐이니까요.
    더 깊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나에게 손을 내밀어 봅니다.
    얼른 거기서 빠져나오라고.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무파사를 밀어뜨린 스카가 될 것인지,
    (상황은 다르지만) 쟈스민에게 손을 내밀던 알라딘이 될 것인지.
    선택은 내 몫입니다.





  • 9월 14일.


    반팔에 패딩조끼 하나 걸칠 정도로 따뜻해진 월요일이었다.
    새벽에 맞춰둔 알람을
    몇 번이나 snooze하느라 피곤하긴 했지만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오일과 향으로 기분을 한껏 끌어올렸다.

    주말 내내 미뤄둔 책을 마저 읽고
    (야릇하고 위험하면서도 머리가 띵해지고 끝내 웃음이 지어진 그런 책이었다)
    해야할 일을 리스트 업하면서
    오늘은 어쩐지 활기차고 생산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오전은 그랬다.
    업무도 잘 진행되으며
    피곤과는 별개로 활기찼고 산뜻했다.

    12시 땡 치자마자
    정확히는 12:01pm.
    동생이 둘째 큰아빠의 부고 소식을 전해왔다.

    암투병으로 위태로운 상황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머리가 웅웅거리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감정을 터놓고자 하면 당장이라도 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직계 부모의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일터에서 마음껏 울면서 속상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머나먼 타지에 나와있지 않은가.
    장례식조차 갈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최대한 감정을 삭히고
    오빠들에게 위로의 문자를 보내는 것 뿐이었다.

    아빠는 한명의 누나와 세명의 형을 두었다.
    그 중 둘째 형은 아빠와 기질도 성질도 외모도 몹시 닮은
    그런 형제였다.

    우리 집안 특유의 거칠고 무뚝뚝한 모습에 늘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아빠를 가장 많이 닮은 또 다른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오늘 또 우리를 떠났다.

    외국에 나와서 산 이후로
    우리 가족은 물론이요
    집안 어른들, 사촌형제들도 만나기 어렵다.
    한국이었다면 못해도 명절마다 봤겠지만
    이제는 내가 한국을 들어갈 때나 겨우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와있는 동안
    제일 좋아하던 사촌오빠를 잃었고,
    그 오빠의 어머니 – 나의 고모 – 를 잃었고,
    내가 참 좋아했던 사람의 아버지를 잃었고,
    오늘, 둘째 큰아빠를 잃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 단 한 번도
    장례에 참여하지 못했다.

    참 이기적인 말일 수 있겠으나,
    그나마 내 직계 가족이 아니라 다들 이해한다.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지.. 하고 핑계를 댄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꼭 찾아오는 두려움이 있다.

    엄마.
    아니 동생일 수도.
    아니 언니일 수도.
    어린 조카일 수도.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일 수도.

    죽음엔 순서가 없으니.

    우리 중 누군가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마지막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조촐한 작별 인사나마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 현실을 내려놓고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을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지만
    문득 걱정이 밀려온다.

    이럴 때 마다
    외국에 나와 사는 내 자신이
    어쩐지 미워지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아, 나를 위해서였지.

    그런데 진짜 나를 위한게 맞나.
    아, 순전히 나만을 위한 거였지.

    매일 내 생각, 내 걱정하는 엄마를 남겨두고,
    그런 엄마를 살뜰히 돌보는 어린 동생을 남겨두고,
    일언반구 상의없이 이민을 결정한 나에게
    모종의 배신감을 느껴 상처받은 언니를 남겨두고,
    8살이 되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던 조카를 남겨두고,
    몸이 떠나온지 11년이 다 되어가도록 마음이 아린 첫사랑을 남겨두고,
    그렇게 오직 나 혼자만의 만족을 위해 떠나왔다.

    하지만 그 결정을 후회하느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지난 11년, 치열하게 살아온 나를 배신하는 말은 할 수 없다.

    다만 완벽한 결정이었을까 묻는다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고 말 할수 있다.

    특히나 오늘처럼
    사랑하는 누군가의 마지막 가는 길 조차
    함께 지켜줄 수 없는 그런 날이 오면

    내가 지금 과연 잘 살고 있는것인지,
    놓치고 있는게 있진 않은지

    묻고
    또 묻다가
    괜히 원망도 해본다.

    큰아빠를 보내드리려고 적기 시작한 글이
    결국 내 얘기로 끝나는 구나.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둘째 큰아빠,

    이제 고통에서 해방되셨나요.
    죽음은 어떤 느낌인가요.
    지금 어디쯤 도달 하셨을까요.

    첫째 큰아빠 말 마따나
    우리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누나, 조카
    모두 그 곳에서 만나셨나요.

    기분이 참 이상해요.
    종교를 믿진 않지만
    그래도 정말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떠나온 세상에 서글프고,
    남겨둔 가족에 미안하겠지만,

    그리웠던 부모 자식 형제가 다시 만나
    지나온 세월 회포도 풀고,
    그리움도 풀어내고,
    함께 얼싸안고 웃을 수 있길 바래요.

    그리고 우리 안부도 전해주세요.
    다들 많이 보고싶다고.

    특히 우리 아빠가 제일 많이 보고싶다고 좀 전해주실래요.

    못났죠?
    가시는 길 따뜻하게 위로해드려야 하는데
    이런 철없는 부탁이나 드리네요.

    죄송해요.
    그래도 둘째큰아빠가 가장 가능성이 높잖아요.
    그러니까 좀 전해줘요.

    그리고 큰아빠도
    사랑하는 동생 꼭 안고
    긴 시간 외로웠을 우리아빠 좀 달래줘요.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요, 다들.

    안녕히 가셔요.
    그리고 잘 지내고 계셔요.
    우리 모두 열심히 살다 갈게요.

    사랑해요.










  • 분신


    완연한 봄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파랗고 태양빛은 강렬한데,
    바람이 시원해서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찬란하게 눈이 부신 풍경들,
    산들거리는 꽃들과 나뭇잎들,
    삼삼오오 함께 놀러 나온 사람들.
    친구들, 연인, 아니면 단란한 가족들.

    The Rocks에 위치한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있는데
    오늘따라 유독 분주하게 느껴진다.
    아, 오늘 Father’s Day였지?
    어쩐지 바쁘더라.

    그나저나 우리 아빤 무얼 하고 있을까?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나도 직접 감사 인사를 전했겠지.
    물론 늘 마음으로 전할 수 있겠지만.

    당신이 일찍 떠나신게 마음에 걸렸을까.
    생각해보면 작게든 크게든 나를 돌보아 주었던 좋은 아버지뻘의 인연들이
    내 인생에 시기마다 꼭 계셨던 듯 하다.

    물론 좋았던 쪽으로 해석하고 싶은 나의 착각일 수 있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 자신감없고 소심해져 있던 나에게
    내 미술적 재능 – 물론 미술의 길을 걷진 않았지만 – 을 칭찬하고 아껴주셨던
    6학년 담임 선생님.
    어머, 이젠 성함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귓털이 송송나고 짙은 뿔테 안경을 쓰셨던 분인데…

    중학교 때엔 박지인 수학 선생님.
    3년 내내 특별히 나를 돌봐주셨다기 보단
    삶의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를 살게해주셨던,
    지금까지 내 인생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어른의 조언을 해주셨던 분.
    소소한 장학금도 받게 도와주셨고,
    무료로 안경을 맞출 수도 있게 해주셨다.
    (실제로 이 때까지 난 내 시력이 나쁘다는 것도 몰랐다.)

    고등학교 때는 누가 계셨을까 생각해보면 의외로 ‘봉고차 아저씨’이다.
    마찬가지로, 딱히 나를 더 챙겨주셨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분은 뭐랄까, 늘 따뜻한 삼촌 같았다.
    거의 매일 아침, 밤으로 환한 미소를 짓고 우리를 태워 날라주셨다.
    가끔은 공부하느라 애쓴다고 비싼 베스킨라빈스도 사주셨지.

    다른 기사님들에게선 절대 느껴본 적 없는,
    그 분 특유의 포근한 따스함이 있었고,
    나는 그 분이 운전하시는 차를 타는게 참 좋았다.
    그 차에선 어쩐지 친구들이랑 즐거운 대화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삭막했던 수험 생활에서 온기가 느껴졌던 봉고차 아저씨의 존재.

    대학에 와선 애증의 ‘배새’가 계셨다.
    학교 다니는 내내 물질적으로 정말 큰 도움을 주셨다.
    다양한 장학금 혜택에 맛있는 밥에…
    (당시의 나는 코끼리만큼 잘 먹어서 사 먹이는 맛이 있긴 했을 것이다)
    물론 그 만큼 조교일을 쎄가 빠지게 하긴 했지만.

    대학생이 되면 돈 쓸 일이 많아진다.
    고등학생 때, 듣고 싶었던 인강 하나 사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을 만큼
    아빠가 돌아가신 뒤 우리 가족은 늘 가난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다니는 학교가 대학교로 달라졌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배새는 수 많은 일거리와 감정 노동을 대가로 많은 장학금 기회를 주셨고,
    퍽퍽했던 내 대학생활에 단비같은, 그야말로 밥줄 이었다.

    그러나 졸업이후 단 한 번도 찾아뵌 적도, 연락을 드린적도 없어
    그는 아마 나를 천하의 Bitch쯤으로 여기시겠지.
    사실 그 분이 뭘 잘못한 것은 없다.
    오히려 돌이켜보면 최고의 은인이셨던 분이다 (물질적으로).
    단점이 있다면 그 시절 흔한 꼰대 아부지 같은 느낌?

    문제는 나였다.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만 잘 할 줄 알았던 나였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같은 것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알바 경험 한 번도 없었던
    그야말로 온실 속 화초,
    아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3.5년을 보냈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나서도 이렇다 할 멋진 취직을 할 자신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두려운 것도 많았던 애송이었군)
    그저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뭐, 사실 다 핑계고,
    그들의 자랑스러운 과탑은 자괴감을 떨치지 못해 도망쳤다.
    나를 아끼고 믿어왔던 분들께는 큰 배신이었을 것이다.

    뭐랄까, 약간 ‘실패한 장남’이 된 기분이었달까.
    내가 보기 좋게 성공해서 그 분들의 자랑이 되기전까지는
    절대 다시 찾아뵙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남아있다.

    그 이후로는 어영부영 호주다.
    재미있게도 11여년을 살아오면서 총 5번의 (현재 포함) 직장을 거치면서도
    아버지 같은 분들을 여럿 만났다.

    2번째 직장에서 Giovanni,
    3번째 직장에서 Al,
    5번째 (현)직장에서 ADV

    나머지 두 곳에서도 아버지 뻘은 아니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들..
    (워딩이 좀 이상한데 공통점을 잡자면 이러하다)이 내게 귀인이 되어주셨다.
    Geoff와 J. G.

    이렇게 되짚어보면 감사했던 분들이 정말 많다.
    난 절대 나 혼자 잘해서 여기까지 온게 아닌데,
    그 분들과는 이래저래 멀어지고
    귀한 연을 잘 이어오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

    어쨋든 Giovanni 얘기로 돌아오자면
    함께 투닥투닥 웃고 장난치고, 때로는 함께 으쌰으쌰 일했던
    친구같은 아부지였고,

    Alex는 다정하고 정 많고, 서로 부둥부둥해주다가도
    가끔씩 꼰대력이 폭발하거나 일적으로 부딪히면
    죽을 듯이 치고 박고 싸우기도 한 애증의 아부지였고,

    현재 ADV 아부지는 약간 딸바보스러운 아부지랄까.
    본인 아드님의 회사에 일하는 나를 정말 딸처럼 대해주신다.
    아들만 둘이라 그런가.

    게다가 부자다. 아드님도 부자다.
    이 두 부자 부자들에게 나는 풍요로움과 나눔, 사랑, 베품을 받았고 배웠다.
    이들을 보면 나도 꼭 이렇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다.
    늘 칭찬과 격려, 따뜻한 말을 주고 받는 이상적인 가족.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벌써…
    음, 99년도 였으니까 이제 거의 27년이네.
    그 긴 시간동안
    어쩌면 진짜 우리 아빠가 보여줬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모습의 아빠들이 내 인생 전반에 걸쳐서
    전우치의 분신 마냥 나타나줬던 게 아닐까.

    끝은 결국,

    나도
    아빠 보고싶다.

    매일 생각하진 않아도
    늘 내 마음속에 살아계신다고 믿어온 우리 아빠.
    이제 몇 년만 더 지나면
    아빠가 세상을 등졌던 나이가 된다.
    나도 이제 맛있는 식사 한끼 멋진 곳에서 대접할 수 있을만큼 컸는데.
    How are you doing out there!!!!

    보고싶다, 유시면씨.

    Happy Father’s Day to you.
    And thank you, as always, for looking after me.

    6 September 2026